티스토리 뷰
목차

1,270만 명. 2015년 영화 <암살>이 거둔 관객 수입니다. 역대 국내 상영작 흥행 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기록인데, 저는 이 숫자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극장을 나오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던 그 몇 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1933년 경성, 목숨을 담보로 방아쇠를 당겼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과서 속 연도 암기와는 전혀 다른 온도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3기, 가장 어두웠던 시절을 배경으로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를 배울 때, 솔직히 저는 연도와 사건 이름을 외우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1910년 국권 피탈, 1919년 삼일운동,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시대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일제강점기는 크게 3기로 나뉩니다. 1기(1910~1919)는 무단 통치 시기로, 헌병 경찰이 총칼을 차고 조선인을 억압하던 시절입니다. 1919년 삼일운동이 만주, 연해주, 미주, 심지어 일본까지 퍼져나가자 국제사회의 눈길이 쏠렸고, 일본은 더 이상 노골적인 강압 통치를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에 2기(1920년대)에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했는데, 문화 통치란 조선인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는 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친일파를 육성해 민족을 분열시키는 기만 정책을 말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3기인 1933년입니다. 일본의 세력이 국제적으로 팽창하면서 수탈과 억압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무렵 약산 김원봉은 의열단을 이끌며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경찰서 등에 폭탄 투척과 총격전을 벌이는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했습니다. 의열단이란 1919년 김원봉이 창설한 항일 비밀결사 조직으로, 일제 주요 기관과 요인을 직접 타격하는 방식으로 저항한 단체입니다. 이후 김원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부사령관으로도 활동했습니다(출처: 독립기념관).
영화는 이 시대적 배경 위에서 김구와 김원봉이 일제 노출 이력이 없는 독립군 3명, 즉 신흥무관학교 마지막 졸업생 안옥윤, 저격수 황덕삼, 폭탄 전문가 주성호(속사포)를 선발해 암살 작전에 투입하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서간도 지역에 세워진 독립군 양성 기관으로, 10여 년간 약 3,500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입니다.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니라 이론 교육까지 병행해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졸업생들은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 1기(1910~1919): 무단 통치 — 헌병 경찰 중심의 강압 지배
- 2기(1920년대): 문화 통치 — 친일파 육성을 통한 민족 분열 정책
- 3기(1930년대): 수탈 극대화 — 민족 말살 정책과 전시 동원 체제
독립운동가들의 민낯, 그들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화려한 총격전이 아니었습니다. 경성에 막 도착한 안옥윤이 처음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고 수줍게 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짧은 대사 하나가 그녀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이었는지를 단번에 보여줬습니다.
안옥윤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남자현 여사입니다. 남자현 여사는 3.1 운동에 참여한 뒤 독립군을 지원하고, 1920년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대첩에도 참전해 '독립군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은 실존 인물입니다(출처: 독립기념관). 청산리 대첩이란 1920년 만주 청산리 일대에서 독립군이 매복 전술로 일본군 약 3,000명을 격퇴한 전투로, 독립전쟁 역사상 가장 큰 승리로 꼽힙니다.
이 승리에 대한 일본의 보복이 바로 간도 참변입니다. 간도 참변이란 1920년 일본군이 독립군을 숨겨줬다는 명목으로 간도에 거주하는 조선인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으로, 독립신문 기록에 따르면 약 3,700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영화 속 암살 타겟 중 하나인 일본군 대위 가와구치 마모루는 바로 이 간도 참변을 일으킨 19사단 지휘관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 배경을 찾아보고 나서야 영화 속 인물들의 분노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라면 당시 그 상황에서 목숨을 걸 용기가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처자식 하나 없이 돈 한 푼 없어도 싸우러 나가는 장면에서, 그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선택인지 가슴으로 느껴졌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교과서 속 위인이 아니라 두렵고 외롭고 때로는 억울하기도 했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이 영화는 그 당연한 진실을 스크린 위에서 아주 생생하게 보여줬습니다.
친일파 염석진, 가장 씁쓸했던 이름
제 경험상 이런 영화를 볼 때 가장 화가 나는 장면은 악랄한 일본군 장면이 아니라 같은 조선인이 동료를 파는 장면입니다. <암살>에서도 그랬습니다.
염석진은 원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911년 테라우치 총독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총상을 입은 채 강인구의 집에 숨어들었고, 그 후 경찰에 잡히면서부터 밀정이 되었습니다. 밀정이란 일제 식민지 시기 일본 경찰이나 총독부를 위해 독립운동 정보를 빼돌리는 조선인 첩자를 뜻합니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그는 이후 암살 작전 정보를 일본 영사관에 넘기고,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청부업자를 고용해 같은 편 대원들을 죽이려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단순히 일본 대 조선의 대결 구도로만 흘러갔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에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같은 민족 안에서 벌어지는 배신이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가장 씁쓸한 장면은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줄여서 반민특위 재판 장면이었습니다. 반민특위란 1948년 제헌국회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설치한 특별 기구입니다. 그런데 염석진은 증인이 모두 죽고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납니다. 심지어 자신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면서요. 제가 이 장면에서 느낀 건 분노보다는 무력감에 가까웠습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영화적 각색이 섞여 있는 만큼 모든 장면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질문, 즉 나라를 배신한 사람이 살아남고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이 이름도 못 남기는 구조가 과연 지금 이 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 물음은 지금 봐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의 실제 모델이 있나요?
A. 네, 안옥윤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남자현 여사입니다. 3.1 운동 참여 이후 독립군을 지원하고 1920년 청산리 대첩에도 참전해 '독립군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은 실존 독립운동가입니다. 영화는 이 인물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창작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이 역사적 사실은 아닙니다.
Q. 간도 참변이 정확히 무슨 사건인가요?
A. 1920년 청산리 대첩에서 독립군에게 크게 패한 일본군이 보복으로 간도 지역 조선인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입니다. 독립신문 기록에 따르면 약 3,700명의 죄 없는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영화 속 암살 대상 가와구치 대위는 이 사건의 지휘관으로 설정된 허구의 인물입니다.
Q. 신흥무관학교는 실제로 존재했나요?
A.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만주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독립군 양성 기관으로, 10여 년간 약 3,500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습니다. 군사 훈련뿐 아니라 이론 교육도 병행해 독립 이후 나라를 이끌 인재 양성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군사학교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Q. 염석진 같은 밀정이 실제로 처벌받지 않은 게 사실인가요?
A. 역사적으로 반민특위가 설치되어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시도했지만, 정치적 이유와 증거 부족 등으로 실질적인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재판 장면은 이 역사적 현실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많은 관객이 가장 분노를 느낀 장면으로 꼽습니다.
결론
영화 <암살>을 다시 떠올리면 총격전의 박진감보다 작은 장면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처음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던 안옥윤, 처자식도 없이 싸우러 나선 속사포, 그리고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걸어 나오는 염석진의 뒷모습까지. 제가 이 영화에서 얻어간 건 감동이나 분노보다 질문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그 시대에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고요.
지금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자유, 우리말로 글을 쓰고 원하는 곳을 걸어 다니는 이 일상이 누군가의 목숨값이었다는 사실을 역사 기념일에만 떠올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 한 편이 두꺼운 역사책보다 그 시대를 훨씬 가깝게 느끼게 해줍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볼 것을 권합니다.